2016년 6월 3일 금요일

MR. WILLIAM SHAKESPEARE -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

MR. WILLIAM SHAKESPEARE - 맥베스 [윌리엄 셰익스피어]스코틀랜드 왕 덩컨 휘하 장군 맥베스와 뱅쿼가 세 명의 마녀들을 만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코더 영주가 된 후 스코틀랜드 왕에 오르고, 뱅쿼는 자손이 왕가를 이룰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정말 코더의 영주가 되자 맥베스는 나머지 예언도 믿게 된다. 맥베스가 부인에게 예언 내용을 말하자 맥베스 부인은 덩컨 왕을 죽일 계획을 짠다. 덩컨이 우리 성에 묵을 때…, 맥베스 부인은 그렇게 맥베스를 부추긴다…. '두려운가요, 당신? 자신의 행동과 용기가 욕망과 같아지는 일이?' 맥베스 부인의 이 말은 우리 모두의 본성 그 밑바닥에 감추어진 욕망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그 주문이, 애써 욕망을 억누르고 있던 ‘사람됨의 도리’의 여러 이름들을 걷어내는 순간 욕망은 어디까지 달릴 수 있을까? 고삐 풀린 맥베스 부부의 욕망과 ‘인간됨의 도리’를 회복하려는 맥더프와 맬컴의 대립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불편함은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욕망과 도리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숨 막힐 정도로 빠르게 전개되는 상황 변화와 거침없는 대사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긴박감을 주는 작품이다.비극 미학에 반영된 운명의 정치학과 정치의 운명예언은 맞았는가, 안 맞았는가? 둘 다 아니다. ‘예언=운명’은 실천되었다. 그게 정치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예언=운명’의 굴레 속에 맥베스의 정치적 음모, ‘정치=음모’는 누추하고 피비리다. 역사적으로 정치는 음모의 틀을 벗지 못했고 ‘정치=음모’는 누추하고 피비린 틀을 벗지 못했다. (레닌의) 혁명도 혹시 그랬던 것 아닐까, 그렇게 질문 혹은 자문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맥베스’는 그렇게 정확히 셰익스피어 시대 인간이면서 ‘정치=보편’적 인간이다. 피비린 남루가 찬란한 현실로 전화하는 과정이 진정 아름다울 때까지…. 그렇게 ‘정치=야만’이 극복될 때까지…. [맥베스]는 (아이스킬로스-소포클레스) 연극의 기원이, 곧장 정치화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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